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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석원의 유래

모석원의 유래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중의 전설이다.
통일신라시대에 해상왕 장보고가 먼 길(지금의 중국 위해시)을 떠나기 위해 안면도 건승포(지금의 방포) 바닷가를 항해하던 중에 거센 폭풍우를 만나 도저히 앞을 헤쳐 나갈 수가 없자 건승포에 해상전진기지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무렵 지리적 요건을 보면 지금의 모석원의 부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모석원의 주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었다.(4500~5000년 전 경) 지금도 모석원 주변에 돌절구, 돌화살촉, 돌도끼, 돌칼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며,
모석원의 지리적 요건을 볼때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산이 있어 큰 포구를 형성하고 있어 강한 바람을 막아주고 큰 해일을 피할 수 있기에 배들의 안전항해를 위해서 피난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모석원의 앞 동네 이름이 사기점인 것인 만큼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요로 했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품목인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고 사기그릇을 구웠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동네 이름이 사기점이라고 불리고 있다.
모석원의 부지 조성을 할 때(1985년 경)에는 고려청자(주병, 술잔, 국그릇, 밥그릇)가 여러점 출토돼 문화재청에 자진신고를 하여 현재 공주박물관에 전시중에 있기도 하며,
고남패총박물관에 전시중인 유물의 대다수가 모석원의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이며 특히 패총(조개무덤)에서 출토된 것이 대다수이다.

모석원의 본관(141번지) 자리에 움막을 짓고 노모와 한 아들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노모가 바다에 조개를 캐러갔는데 폭풍우를 만나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바다에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를 않자 이 아들은 어머니의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러야 하는 지경에 놓인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시신도 없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아들의 딱한사정을 생각해서 하얀 차돌을 깍아서 어머니의 형상을 조각한 차돌을 상여에 태워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왔다.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와 보니 아들 또한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지가 2년이 넘는다는 말을 마을 사람들한테 전해 듣고
어머니는 본인의 묘를 파서 어머니의 형상을 한 차돌을 다시 꺼내서 아들의 형상을 만들어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모석원의 원래 지명은 바닷가에 있는 고을이라 하여 해곡(海谷)동이라고 불렸으나 이런 일이 있은 이후 어머니의 형상을 한 돌이 있다하여
모석(母石)원이라고 입에서 입을 통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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